2009년 02월 25일
성공회 전례 포럼에 대한 제안
...........이글은 성공회 신학-전례학 포럼(http://liturgy.skhcafe.org)에 포스팅한 글을 옮겨왔다.............
전례 포럼을 보면서 느낀점을 몇 문단에 걸쳐 써봅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저 역시 대부분 눈으로만 보고 적극적으로 포럼에 참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포럼이 활기가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짧지만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명 저보다 고민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 짧은 결론은 참여없는 관망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쓸데없는 딴지가 될 지도 모를거란 두려움이 앞섭니다만 용기내어 적어봅니다. 포럼을 보면서 느낀점과 함께 했으면 하는 바를 적어 보겠습니다.
1.전례는 신학적 성찰의 결과를 반영해야한다
하느님 백성의 예배인 전례는 당연히 그 각 구성원의 신앙적인 체험과 이에 대한 해석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성공회와는 다른 전례적 전통을 가진 교회들(천주교, 정교회, 루터교 등) 역시 자신들 나름의 전례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왔다고 봅니다. 우리 역시 성공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신앙체험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며 이에 앞서 스스로의 정체성 확인을 위한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신학은 신앙에 대한 이성적인 반성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2.신학적 성찰은 context(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신학한다고 할 때, 그저 어려운 책이나 난해한 이론만을 다룬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뜬구름 잡는 말장난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 속에서 이루어질때, 신학이 신학다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즉, 전체 성공회 커뮤니티에 대한 신학적 성찰도 의미있지만 적어도 신학적 성찰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나"와 관련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인이며 한국에 살고 있는 성공회 신자- 더 구체적으로 나누면 남자/여자/어른/아이/평신도/성직자/수도자 등 나눌 수 있습니다- 입니다. 살아가고 숨쉬는 나 자신과 나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시간과 공간이 신학적 성찰의 출발점입니다.
3. 신학적 성찰의 출발점으로서 "나"에 대한 서술을 간과해선 안된다
성공회 신자로 살아가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을 때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이유들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대답들은 정답이 아닌 해답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지지되고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상 성공회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들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삶을 기억하고 닮으며 궁극적으로는 그분과 일치하기를 열망하고 이를 실천하려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 상황과 맥락(Context) 안에서 우리는 얼마만큼 예수 그리스도(Text)를 기억하고 마음에 담고 그를 따라 살려고 애쓰는가요?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공동체와 함께 해 나가야 하는 이들입니다. 제가 성공회 신자로 살아가는 이유는 이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이 성공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4.개별적 성찰에 대한 "공동체적" 식별이 병행되어야 한다
성공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물을때, 그 교회에 몸담고 살아가는 그 구성원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그 교회를 드러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닌 믿는 이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나와 같은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의 신학적 성찰-거창하게 표현해서 그렇지 더 쉽게 말하면 삶 속에서 만나는 신앙체험에 대한 차분한 정리하고 할 수 있습니다-에 귀기울이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신앙의 길잡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나아가 우리만의 고유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5.전통과 오늘날의 신앙 이해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매꾸은 것은 우리의 몫이다
역사를 통해 이어져 온 전례는 앞선 수많은 (신앙적)체험공동체의 소중한 보화입니다. 우리는 그 보화에 우리의 역사를 더하고 풍요롭게 해야하는 사명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가 역사성과 사회성을 가지고 변화하듯이 전례적 표현들 또한 변화합니다. 전례의 정신은 변화하지 않습니다. 전례의 정신이 바뀐다면 신앙의 대상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전례 정신 즉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 - 연대해야 한다
끝으로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이야기 되는 장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성공회의 정신인 관용과 중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적어도 같은 믿음을 가진 이들 간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두에 전례는 신학적 성찰의 결과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했듯이 우리의 신앙이 전례 정신 속에서 아름답게 꽃피워지길 바랍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과 늘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일원이면도 우리는 영국성공회도 미국성공회도 호주성공회도 아닌 대한 성공회 신자입니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연대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통해 우리의 색깔을 보다 분명히 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했으면 합니다. 저도 그리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 쓰고 나니 제 글이 구체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추상적인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스스로 작은 방향성을 가지기 위한 다짐의 글이기도 하며 포럼에 참여하시는 분들의 도움을 바라는 마음으로 적은 글입니다.
# by | 2009/02/25 03:37 | 더불어 함께 | 트랙백 | 덧글(0)




